绍兴有戏 ·
绍兴古城故事汇

众里寻她千百度,蓦然回首,却在绍兴古城故事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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赵之谦轶事

赵之谦轶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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赵之谦(1829-1884),字益甫,号伪叔,不但工书善画,还利口善言,留下轶事连篇。在省城乡试时,遭到同住者之父钱俭的嘲笑后沉稳反击;出宰江西时,为候补道题字作画却暗藏讥讽;官南城知县时,为令他厌恶的同僚题联时笑骂文言间,可谓一代书家,风趣幽默、机智敏捷。

先说他年轻时省城乡试,同住者之父钱俭来省城看儿子,常出言嘲笑他,赵之谦忍无可忍,编出一个段子:“玉帝大宴诸神,急行神上报:‘孔子乘木排在海上遇到急难!’龙王前往海上,见刘海蟾施法定住木排,跟孔子纠缠。便叱骂道:‘你已得享金钱,为何还妄想置身士林?天下无耻之徒,都无人及你!不赶紧离开,将罚你世代做乌龟。’刘海蟾羞愧难当,抱头鼠窜,孔子得以解脱。”钱俭无言以对。

再说他出宰江西,有个候补道请他题行乐图。赵之谦无奈,遂取图视之,见中绘一大人翎顶辉煌,旁轩绿呢大轿,似是行将出门。于是题下四句:“红顶花翎,绿呢大轿,欲后有凭,立此存照。”

还有,赵之谦任江南知县时,有个不识字的同僚,以采办皇木致富。为附庸风雅,乞求赵为之撰一副楹联。赵之谦厌恶其为人,推脱无法,便写下:藏书万卷可教子,买山十里都种松。

同僚如获至宝,将其镌在厅中楹柱上。后来有个通文墨的朋友告诉他:“这岂是称赞,是在讥刺你采办皇木致富。”那同僚大呼“上当”。可抹不掉、铲不动,急得他干瞪眼。

— English —

Anecdotes of Zhao Zhiqian

Anecdotes of Zhao Zhiq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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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hao Zhiqian, who styled himself as Yi Fu, had literary name of Wei Shu. He was not only good at writing and painting, but also quite eloquent. There were numerous anecdotes about him. In triennial provincial examination for the degree of juren, he made a suitably cutting retort after being laughed at by Qian Jian, the father of his roommate. When he became the county official in Jiangxi, he wrote inscription for a candidate official with hidden sarcasm; As a county magistrate in the south of the Yangtze River, he criticized fellow officials who disgusted him. He was a great master of calligraphy with humor and quick wit.

When he was young, he had an examination for the degree of juren in the provincial capital. Qian Jian, the father of his roommate, came to the provincial capital to see his son. He often laughed at him. Zhao Zhiqian couldn't bear it any longer. He made up a story, "The Jade Emperor was holding a feast and one god rushed to report to him,' Confucius encountered urgency at sea on a raft!' The King of Dragon went to the sea, and saw Liu Haichan trying to stabilize the wooden raft and pestering Confucius. Then he scolded,' You have already made money, why do you still want to be government officials? There are no shameless people in the world like you! If you don't leave quickly, you will be punished as a turtle for generations.' Liu Haichan was ashamed and left in such a scurry, and Confucius was freed. "Qian Jian was speechless.

When he became the county official in Jiangxi, a candidate official asked him to write inscription on a picture for him. Zhao Zhiqian could not refuse, so he took the picture and looked at it. The picture was about an official man wearing a brilliant crest, with a big green sedan chair beside him. It looked as if the man was about to go out. So Zhao Zhiqian wrote words below, "Red-topped crest, big green sedan chair, is the proof of my inscription."

When Zhao Zhiqian was a county magistrate in the south of the Yangtze River, there was an illiterate fellow who became rich by dealing the imperial timber. He begged Zhao to write couplets for him to show he was arty. Zhao Zhiqian disliked his vanity, but he couldn't refuse. He wrote, “Enlightening offspring by thousands of books, and planting pines on mountains for ten miles.”

The fellow was so happy as if he had found the most valuable treasure. He engraved these words on the pillars in the hall. Later, a friend told him, "This is not a compliment, but a mockery of your business of imperial timber." The fellow shouted, "I've been diddled." But these words can't be erased or removed from the pillars, which made him anxious but could do nothing abou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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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겸(赵之谦)의 일화

조지겸(赵之谦)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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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겸은 자는 익보(益甫), 호는 위숙(伪叔)으로, 서예와 그림에 능할 뿐만 아니라, 말 재주도 능하여 여러 일화를 남겼다. 향시에 응시할 때 함께 사는 사람의 아버지 전검(钱俭)이 비웃자 침착하게 응사하였다. 강서에 재직 중일 때 부 감찰사를 위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때 풍자를 통해 그를 비판하였다. 강남 지사(知县)로 있을 때, 그가 싫어하는 관리에게 대련(对联)을 써 줄 때 글귀에 해학과 풍자로 표현하였는데 그는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한 시대의 문장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젊었을 때 과거시험에 응시하였는데 함께 사는 사람의 아버지인 전검(钱俭)이 성도에 와 아들을 볼때면 늘 그를 비웃었는데, 조지겸은 참을 수 없어서 한 글귀로 응수하였다. "옥황상제가 신들에게 크게 잔치를 베풀고 있는데 급행신이 보고하기를 '공자가 뗏목을 타고 바다에서 급난에 봉착했다!' 용왕(龙王)이 바다로 갔을 때, 유해섬(刘海蟾)이 뗏목을 잡고 공자와 논쟁하는 것을 보았다. 질책하며 말하길"너는 이미 돈을 얻었는데, 왜 멋대로 사림에 머무르려고 하느냐? 천하의 파렴치한 놈 같으니라고! 너같은 놈은 본적이 없다! 빨리 떠나지 않으면 네가 대대로 거북이가 되도록 벌을 주리라."라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유해섬은 창피하여 대꾸도 못하고 꽁무니를 내빼고 달아나자 공자는 겨우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 이 이야기를 들은 전검은 할 말이 없었다.

또 한 번은 조지겸이 강서(江西)에서 재직 중일 때, 어떤 부 감찰사가 그에게 행락도(行乐图)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조지겸은 어쩔 수 없어 그림을 꺼내 보았는데, 가운데에 그려진 대인의 깃털이 휘황찬란하고, 옆에는 푸른 가마가 있어, 마치 행차하는 장군처럼 보였다. 그래서 "붉은 깃털과 푸른 가마, 욕된 행실을 증거로 남기려면, 지금 바로 이것을 보존하라."라는 네 구절을 제목으로 붙였다.

또한 조지겸은 강남지현으로 있을 때 글을 모르는 관료가 있었는데 황궁을 지을 때 목재를 납품해서 부자가 되었다. 조지겸에게 대련을 만들어 달라고 애걸하였다. 조지겸은 그의 사람됨을 싫어하였으나 도저히 거절할 수 없어서, ‘장서 만 권은 자손을 가르칠 수 있고, 산 10리를 사면 모두 소나무를 심는다’라고 썼다.

그 관료는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며 대청 기둥 위에 새겨 놓았다. 후에 글에 통달한 어떤 친구가 그에게 "이것이 어찌 칭찬이라고 생각나. 황실에 목재를 납품해 부자가 된 것을 비꼬는 것이네."라고 알려주었다. 그 관료는 속은 것을 그 때서야 알았으나 지울 수도, 뜯어 낼 수도 없어서 그저 화가나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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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之謙の逸話

趙之謙の逸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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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之謙、字益甫、号偽叔、書を書き、絵を描くだけでなく、口を利いて雄弁に語り、逸話をたくさん残している。郷試の時、同居者の父の銭倹に嘲笑された後に落ち着いて反撃した、江西省を出宰した時、候補道のために絵を描いたが、ひそかに皮肉を込めていた、江南県に赴任した時、嫌われた同僚のために笑い、ののしり、文語を交わす書家の一代で、ユーモアに富んで機転が利いていた。

まず彼が若い時に郷試を省したことを言って、同居者の父銭倹が省城に来て息子に会いに来て、しょっちゅう彼を嘲笑した。趙之謙は堪忍袋の緒が切れて、1つのネタを編み出した「玉帝は諸神を大宴して、急行神は『孔子は木に乗って海上で急難に遭遇した!』竜王は海に行くと、前髪がいかだをして孔子につきまとうのを見た。「あなたはすでにお金を得ているのに、どうして士林に身を置くことを妄想するのですか。天下の恥知らずは誰もあなたには及ばないのです。早く出て行かないと、あなたに代々亀に罰せられます」と叱責した。前髪ガエルは恥ずかしくてたまらなく、頭を抱えて逃げ出し、孔子は解放された」と銭倹は絶句した。

それに彼は江西省を出て、ある候補道は彼に行楽図を問題にしてもらった。趙之謙は仕方がないので、図を取って見ると、中絵一大人の羽毛が光り輝いていて、隣の軒に緑の大輿が出ようとしているように見えた。すると、「赤頂花翎、緑は大輿、欲後有証拠、立此存照。」と題された4つの句がある。

また、趙之謙が江南県に在任していた時、字の読めない同僚がいて、皇木を采用して富を得た。対聯のために趙に哀願する。趙之謙はその人となりを嫌って、それを逃れようとしなかったので、書いた。万巻の書物を蔵して子を教えることができ、十里の山を買うにも松を植えることができた。

仲間は宝を得て、庁の中の柱に刻みつける。後に文通の友人が教えてくれた。「これは称賛ではなく、お前が皇木を手に入れて富を得ていることを皮肉っているのだ」。その同僚は「だまされた」と叫んだ。消すことも、すくい取ることもできないので、彼はあせって目を丸く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