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孙清简与太平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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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弄起于府山直街,止于偏门直街。太平弄源于明朝万历年间吏部尚书孙清简即孙鑨和谐邻里的故事。孙鑨家兴建府第,恰巧对面的赵家也兴建土木,双方为院墙脚基发生争执。孙夫人连夜修书向丈夫求助,孙鑨劝说夫人不要拘泥于此,让他四尺又何妨。赵家也深受感动,退让了四尺,这就有了这条象征绍兴人礼贤谦让、睦邻友好的太平弄。
当年,孙鑨在朝廷任职,正当山阴老家兴建府第之际,与孙家相对的赵侍郎家也在同时兴建土木。两户人家一起造府宅,原本是好事,然而府第竣工后,双方都要打院墙,砌院墙时为墙脚基的摆放产生了摩擦,谁家也不肯退让。
孙鑨夫人连夜修书差人送往京城,向丈夫求助。孙鑨接到夫人的传书,提笔回复她要把格局放大,让他四尺又何妨?夫人接到孙鑨的回复,心怀一下旷达起来,主动让了赵家四尺。赵家也是官宦之家,知书达理,为孙家主动退让而深受感动,也将院墙脚基后退了四尺。于是,两家院墙之间便出现了一条弄堂,这条弄堂让两家的争执平息,从此两家睦邻友好。
人们为了表达对谦逊礼让的景仰,传播这种睦邻礼让精神,便将这条弄堂取名为太平弄,两头延伸,一头至府山直街,另一头至偏门直街。这段佳话,也世代相传,成为绍兴人宽宏大量、礼贤谦让的典范。
— English —
41. Qingjian Sun & Taiping L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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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ping Lane starts at Fushan Straight-Street and ends at Pianmen Straight-Street. Taiping Lane originated from the story of a harmonious neighborhood told by Qingjian Sun, an official of the Ministry of Civil Affairs during the Wanli Period of the Ming Dynasty. Long Sun built the house, while Zhao's family on the opposite side also built the house. There was a dispute between the two sides over the foundation of the courtyard wall. Mrs. Sun asked her husband for help at night. Long Sun advised her not to stick to it. Why not let him four feet? The Zhao family was also deeply moved and gave in four feet, which led to the Taiping Lane. It symbolized the courtesy, humility and good neighborliness of Shaoxing people.
At that time, Long Sun was working in the imperial court. Just the house was built in his hometown, Shanyin; the Zhao Shilang’s family, opposited to the Sun family, was also building the house. It was originally a good thing for two families to build the mansion together. However, after the completion of the house, both sides had to fight against the courtyard wall. When the courtyard wall was built, there was friction for the placement of the foundation at the foot of the wall, and no one would give in.
Mrs. Sun sent the letter to the capital by night to ask her husband for help. Sun received a letter from her wife and replied to her. What would it be like to enlarge the pattern and let him four feet? After receiving Sun's reply, Mrs. Sun was broad-minded and took the initiative to let the Zhao family go four feet. The Zhao family was also a family of officials. They are knowledgeable and reasonable. They were deeply moved by the Sun family's initiative to give way, and they also retreated the foundation of the courtyard wall by four feet. Thus, a lane appeared between the two courtyard walls, which calmed down the dispute between the two families, and the two families became good neighbors.
In order to express people's admiration for humility and comity, and spread the spirit of good neighborly comity, people named this Taiping Lane, extending from two ends to Fushan Straight-Street and Pianmen Straight-Street. This story has also been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and has become a model of generosity, courtesy and humility of Shaoxing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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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청간과 태평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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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골목은 부산직로(府山直街)에서 시작하여 편문직로(偏門直街)에서 멈춘다. 태평골목은 명나라 만력 시대 이부상서 손청간(孫淸簡)이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던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손 씨가 관사를 짓고, 공교롭게도 맞은편 조 씨 집도 토목공사를 하면서 담장 다리 문제로 다툼이 벌어졌다. 손부인은 편지를 써서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자, 손완은 부인에게 이에 얽매이지 말 것을 권하며 넉자 양보해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이에 조 씨네도 감동받아 넉 자 물러섰는데, 이로하여 소흥 사람들의 예의와 겸양 그리고 선린 우호를 상징하는 태평로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조정에 재직하던 손 씨가 산음(山陰)의 고향집에 관저를 지을 즈음, 손가와 마주보고 있던 조시랑의 집에서도 토목 공사를 하고 있었다. 두 집이 함께 집을 짓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관저가 완공된 후에 양쪽 모두 담장을 쌓아야 했고, 담장을 쌓을 때 담 기초의 배치문제로 마찰이 생겼는데 누구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손부인은 편지를 써서 경성으로 보내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부인의 편지를 받은 손 씨는 넉 자 양보한들 무방하지 않냐고, 마음을 넓게 먹도록 권하였다. 부인은 손의 회답을 받고, 마음이 훨씬 홀가분해져 조 씨네에게 먼저 넉 자 양보하였다. 조가(趙家) 역시 벼슬아치 집안으로 이치를 알고 손가(孫家)의 양보에 감동받아 마당 담장을 넉 자나 뒤로 물러났다. 그리하여 두 집 담장 사이에 골목이 생겼고, 이 골목이 두 집 사이의 다툼을 가라앉히면서 두 집안은 우애있게 지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두 집안의 겸손함과 양보심에 존경을 표하고, 이런 선린 예양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서 이 골목을 태평골목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 골목은 양쪽으로 뻗어 하나는 부산직로까지, 다른 하나는 편문직로까지 이어졌다. 이 미담은 또한 대대로 전해져 소흥인의 관대함, 예의, 겸손, 양보심의 모범이 되었다.
— 日本語 —
孫清簡と太平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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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弄は府山直街で始まり、偏門直街で止まった。太平弄は明代の万暦の年間、吏部尚書孫清簡和隣里の故事に由来する。孫家が府第を建てると、ちょうど向かいの趙家も土木を建てることになり、双方が塀の土台をめぐって争いになった。孫夫人は夜通し本を修めて夫に助けを求めたが、孫夫人はそれにこだわらないで、四尺でもいいじゃないかと説得した。趙家も感銘を受けて、四尺譲った。そこに紹興人の礼賢謙譲、善隣友好を象徴する太平弄があった。
当時、孫は朝廷に赴任していたが、山陰の実家が建立された際、孫の家とは反対側の趙侍郎の家も同時に土木を建立していた。二世帯が一緒に家を建てるのは、もともとはいいことだったのだが、府が竣工してから、双方が塀を築かなければならず、塀の土台の配置に摩擦が生じたため、どちらの家も引き下がらなかった。
孫夫人は夜通し便りを修めて人を都に送り、夫に助けを求めた。孫は夫人の伝書を受け取ると、文章をとりあげて、構図を大きくして、4尺譲ってもいいじゃないかと返事をした。孫の返事を受け取った夫人は、ちょっと話を聞きだして、趙家を自分から四尺譲った。趙家も官吏の家で、書も道理もわかっていたので、孫家が自分から譲歩したことに深く感動し、塀の土台を四尺も後退させた。すると、二つの塀の間に小路ができた。この小路が二つの家の争いを静め、二つの家は仲良くなった。
人々は謙遜礼譲への敬慕を表現し、この善隣礼譲の精神を広めるために、この小路を太平弄と名づけ、両側に延び、一方は府山直街、もう一方は偏門直街に至る。この美談も、代々伝えられ、紹興人の寛大さ、礼賢謙譲の模範とな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