绍兴有戏 ·
绍兴古城故事汇

众里寻她千百度,蓦然回首,却在绍兴古城故事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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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文澜故居

范文澜故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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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文澜(1893-1969),字云台、仲云,绍兴人。范文澜故居,位于龙山后街,临水沿街,与大通学堂相向而立约百米。该故居坐南朝北,共三进,均为平屋,占地面积891平方米,系清代建筑,为中国现代著名历史学家范文澜出生地。绍兴市政府于1993年第一次修缮,现为绍兴市文物保护单位。

清光绪十九年,范文澜出生于绍兴城内锦麟桥范家台门。锦麟桥范氏,乃北宋名相范仲淹后裔,世代书香门第,素称“清白世家”。

范文澜与鲁迅交往密切,结下深厚友谊。鲁迅在北京时,范文澜经常和鲁迅会面,鲁迅曾赠送《会稽郡故书杂集》给他,他也曾将专著《文心雕龙讲疏》赠送给鲁迅。鲁迅曾受范文澜启发,从其笑话中引出笑话,于《晨报副刊》发表《对于“笑话”的笑话》一文。

范文澜是历史学家,鲁迅和他谈话的内容大都和历史有关。鲁迅曾一度潜心研究汉魏隋唐石刻碑拓,受鲁迅影响,范文澜也特别注意此种石刻碑拓的搜集。大学毕业后,他到古都开封一带考察史迹,曾搜集了很多自魏至宋的石刻拓本来,并特意为鲁迅拓了八十多份拓片赠送给他,共同探讨。

鲁迅定居上海后,曾两次回北京探望母亲。每次回京,范文澜都会去看望鲁迅。1932年,范文澜任北平大学女子文理学院院长时,鲁迅应其之邀到文理学院演讲,晚上留在范文澜家共进晚餐。可见两人交情匪浅。鲁迅认为范文澜“是一个道德高尚的学者。”范文澜和鲁迅彼此丹心相照,直到鲁迅逝世。

— English —

Former Residence of Fan Wenlan

Former Residence of Fan Wen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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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rmer residence of Fan Wenlan (1893-1969) is located in the back street of Longshan by the water, and about 100 meters away from the Datong School. It faces the north with three parts, all of which are flat houses, covering an area of 891 square meters. It is a Qing Dynasty building and is the birthplace of the famous modern Chinese historian Fan Wenlan. The Shaoxing Municipal Government renovated it for the first time in 1993.

In the 19th year of Guangxu in the Qing Dynasty, Fan Wenlan was born at Fan Family of Jinlin Bridge in Shaoxing City. The Fan Family is known as the "No-corruption Family" for generations, they lived near the Jinlin Bridge as the descendant of Fan Zhongyan, a famous prime minister in the Northern Song Dynasty.

Fan Wenlan had close contacts with Lu Xun and they forged a profound friendship. When Lu Xun was in Beijing, Fan Wenlan often met with Lu Xun. Lu Xun once gave him "Collections of Ancient Books of Huiji County", and he also gave Lu Xun the book called "Wen Xin Diao Long Jiang Shu" . Inspired by Fan Wenlan, Lu Xun drew jokes from his jokes and published an article "Jokes about "Jokes"" in newspaper.

Fan Wenlan is a historian, and most of talks with Lu Xun are related to history. Lu Xun once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of stone inscriptions in the Han, Wei, Sui and Tang Dynasties. Under the influence of Lu Xun, Fan Wenlan also paid special attention to the collection of such stone inscriptions. After graduating from university, he went to the Kaifei, an ancient capital to investigate historical sites. He collected many stone rubbings from the Wei to Song Dynasty, and specially gave more than 80 rubbings to Lu Xun to discuss together.

After Lu Xun settled in Shanghai, he returned to Beijing twice to visit his mother. Fan Wenlan would visit Lu Xun every time he returned to Beijing. In 1932, when Fan Wenlan was the dean of the Women's College of Arts and Sciences at Peking University, Lu Xun was invited to give a speech at the College of Arts and Sciences, and stayed at Fan Wenlan's home for dinner in the evening. It can be seen that the they have a great friendship. Lu Xun believed that Fan Wenlan was "a scholar with noble morals." Fan Wenlan and Lu Xun had a close contact with each other until Lu Xun's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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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문란생가

범문란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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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문란(凡文蘭, 1893~1969) 생가는 용산 뒷골목 하천가에 위치하며 맞은 편에 대통학당과 100미터 가량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다. 세 동의 단층 가옥이 남향으로 건설되어 있으며 이 가옥은 대지 891㎡에 청나라 건축양식으로 중국 현대의 저명한 역사학자 범문란(范文蘭)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소흥시는 1993년 1차로 보수하였다.

청나라 광서 19년, 범문란은 소흥성내 금린교 범가대문에서 태어났다. 금린교 범씨(錦仁橋 凡氏)는 북송의 명 재상 범중엄의 후예이며 대대로 학자 가문으로 '청백세가(淸白世家)'로 불렸다.

범문란은 노신과 친하게 사귀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 노신이 북경에 있을 때, 범문란은 자주 노신과 만났는데, 노신은 그의 저서《회계군 고서잡집》을 그에게 선물했을 뿐 아니라 범문란 또한 노신에게 전문 저서 《문심조룡강소》를 선물하였다. 노신은 일찍이 범문란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조간신문 부간》에 《“비웃음”에 대한“놀림”》이라는 글을 한 편 발표하였다.

범문란은 역사학자라 그가 노신과 이야기한 내용은 대부분 역사와 관련이 있었다. 노신은 한나라 시대부터 위나라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시대의 석각탁본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는데 이런 노신의 영향을 받아 범문란도 석각탁본을 수집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옛 도읍 하남성 개봉 일대를 답사하러 갔는데 위나라 시대부터 송나라 시대까지의 석각을80여부 정도 탁본을 떠와 노신에게 선물하며 그와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노신은 상하이에 정착한 후 두 차례/ 베이징으로 어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었다. 그 때마다 범문란은 노신을 찾아왔다. 특히 1932년 범문란이 북평대학교 문리대학 원장을 맡고 있을 때 노신은 그의 초청에 응해 문리대학에서 강연을 하였다. 그리고 강연이 끝난 후에는 범문란의 집에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였다. 이것만 봐도 두 사람의 교분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다. 노신은 범문란을 도덕적이고 고귀한 학자라고 평가하였다. 범문란과 노신은 노신이 작고하는 그날까지 진심으로 마음을 트고 지내던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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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文瀾旧居

范文瀾旧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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范文瀾(1893-1969)の旧居は龍山の裏通りに位置し、水に面して通りに沿って、大通学堂と約100メートル向かい合って立っている。この旧居は北向き、全部で3軒の平屋で、敷地面積が891平方メートルである。旧居は清代の建物で、中国現代の有名な歴史学者范文瀾の出身地である。紹興市政府は1993年に初めて修繕した。

清光緒19年、范文瀾は紹興城内の錦麟橋範家台門に生まれた。錦麟橋範氏は北宋の名相範仲淹の末裔で、代々学者の家柄で、もともと「清流名門」と呼ばれていた。

范文瀾は魯迅と密接に交際し,深い友情を結んだ。魯迅が北京にいた時、范文瀾はよく魯迅と会った。魯迅はかつて『会稽郡故書雑集』を彼に贈って、彼もかつて自分の著書『文心雕龍講疎』を魯迅に贈ったことがある。魯迅はかつて范文瀾に触発され、彼のジョークの中からジョークを引き出し、『朝刊副刊』に『「ジョーク」に対するジョーク』という文章を発表した。

范文瀾は歴史学者で,魯迅と彼の談話の内容は大部分歴史と関係がある。魯迅はかつて漢魏隋唐の石刻碑拓の研究に没頭していたが、魯迅の影響を受け、范文瀾もこの石刻碑拓の収集に力を入れた。大学卒業後、彼は古都開封一帯で史跡を視察し、魏から宋までの石刻拓本を多く収集し、わざわざ魯迅のために八十数部の拓本を彼に贈り、共同で検討した。

魯迅は上海に定住した後,2度北京に帰って母を見舞ったことがある。北京に帰るたびに,範文瀾は魯迅を訪ねた。1932年、范文瀾が北平大学女子文理学院の院長を務めていた時、魯迅はその招きに応じて文理学院に講演し、夜は范文瀾の家に残って夕食を共にした。二人の仲が緊密であることがわかる。魯迅は范文瀾を「道徳高尚な学者である」と考えた。魯迅が亡くなるまで、范文瀾と魯迅は肝胆相照らし、ずっと仲良か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