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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六九”伤科的传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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绍兴“三六九”伤科,系“下方寺里西房伤科”,早期因行医者世居山阴下方禅寺里西房而得名。因每逢三、六、九行医,门庭若市,久而久之,“三六九”便成了骨伤科的代名词。“清明时节雨潇潇,路上行人跌一跤,借问伤科何处有,牧童遥指下方桥。”这是一首流传在绍兴的民谣,伤科指的是下方桥的“三六九”。
旧时齐贤羊山一带采石业兴盛,但开采工具简陋、方法原始,伤者无数。碍于治疗手段的落后,伤者的家属只好去求神拜佛,保佑家人平安。一日,一银须老僧到来,他从羊山上采来树根野草之类,碾研火煎,粘在粗布上,名曰:“膏药”。将这膏药贴在受伤的石工们的患处用以接骨治伤,断腿的竟然重新站了起来,伤臂的重新挥起了铁锤。
寺里的小和尚纷纷远道而来,拜师苦学三载,终于掌握了这门绝技。学成之日,老僧驾一祥云,飘然而去。人们议论老僧是弥勒佛下凡。为感谢恩典,便在羊山孤岩上雕凿了一尊弥勒佛像。
为了恩泽百姓,方便病人治疗,寺里便在萧山、绍兴、上虞各设一个治疗点,由一医术高超的老和尚巡回坐诊,每逢一、四、七日在萧山西兴开诊,每逢二、五、八日在上虞东关开诊,每逢三、六、九日在绍兴宝珠桥河沿开诊,并开始在民间收徒授技,使这一绝技不断发扬光大。由于绍兴城里人气最旺,且水陆交通方便,求诊者也特别多,“三六九”便成了骨伤科的代名词,名满浙东。
— English —
The legend of “369” Traumat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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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oxing "369" Department of Traumatology, which belongs to the Department of Traumatology in the West Room of the Xia Fang Temple, was named after the practitioners who lived in the West Room of the Temple under the mountain shade in the early days. Because every 3, 6, 9, doctors would go to Shaoxing to practice medicine, and were crowded with patients, over time, "369" has become synonymous with orthopedics. "During the Qingming Festival, it rained, and pedestrians on the road fell. When asked where the wounded department was, and the shepherd boy pointed to the Xia Fang Bridge." This is a folk song circulating in Shaoxing. Traumatology refers to the "369" of the Xia Fang bridge.
In the old days, quarrying flourished in yangshan, Qi Xian, but the mining tools were rudimentary and the methods were primitive, with countless injured people. However, due to the backward treatment methods, the families of the injured had to worship Buddha and bless their families. One day, an old monk with silver beard arrived. He picked up roots and weeds from yangshan, ground them and fried them with fire, and stuck them on coarse cloth. Called it "Plaster". The plaster was pasted on the affected part of the injured masons, and the broken leg and the injured arm recovered.
Young monks in the temple came to study hard for three years, and finally mastered this stunt. On the day when he mastered the skill, the old monk drove a lucky cloud and drifted away. People talked about the old monk's descent from Maitreya. To expess gratitude, a statue of Maitreya Buddha was carved on the lonely rock in Yangshan.
In order to benefit the people and facilitate the treatment of patients, the temple had set up a treatment point in Xiaoshan, Shaoxing and Shangyu. An old monk with excellent medical skills had the touring clinic. Every 1,4,and7 , he was in Xi Xing, Xiaoshan. Every 2, 5 and 8, he was in Dongguan, Shangyu and every 3, 6 and 9, he was in Baozhuqiao River in Shaoxing. He also began to receive students and teach them skills, making this unique skill branch out. Because Shaoxing is the most popular city with convenient land and water transportation, and there were a lot of patients, "369" has become synonymous with orthopedics and traumatology, and it is famous in eastern Zhejiang.
— 한국어 공부 해요 —
‘삼육구(三六九)’ 정형외과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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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흥 ‘삼육구’ 정형외과는 ‘하방사(下方寺) 리서방(里西房) 정형외과’로 초기에 의사들이 대대로 산음(山阴) 하방사 리성방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매달 삼일, 육일, 구일에 진찰을 하러 소흥에 와서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차차 ‘삼육구’가 정형외과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소흥에 ‘清明时节雨潇潇,路上行人跌一跤,借问伤科何处有,牧童遥指下方桥’떠 돌던 민요에 나오는 정형외과는 하방교에 위치한 ‘삼육구’를 말한다.
오래전 제현 양산(齐贤羊山) 일대에 채석업이 흥했는데 채석은 매우 위험한 작업이라 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이 부상자들의 가족들은 근처 하방사에 가서 부처님께 가족을 평안하게 해 달라고 빌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은빛 수염이 난 노승이 봉래산(蓬莱山) 하방사에 내려왔는데 양산에서 나무 뿌리와 덩굴, 나물 같은 것들을 캐와서 반죽 상태가 될 때까지 달였다가 거친 천에 널어 놓고는 ‘고약(膏药)’이라 이름지었다. 노승이 이 고약을 팔다리가 부러진 공인들의 상처에 붙여서 접골술을 행하였더니 다리가 부러진 자는 다시 일어서고 팔이 부러진 자는 다시 망치를 휘두르게 되었다.
하방사의 어린 스님들은 멀리서 온 이 노승을 스승으로 모시고 3년을 고학하여 드디어 이 절기를 터득했다. 제자들이 절기를 터득하던 날 노승은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멀리 떠나 버렸다. 사람들은 그 노승이 틈림없이 미륵보살의 화신이라고 여겨 미륵보살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양산의 튀어나온 바위에 미륵보살의 상을 조각하기로 했다.
백성들이 쉽게 치료를 받기 위해 하방사에서 소산(萧山), 소흥, 상우(上虞)에 각각 치료 거점을 하나씩 설치하고 의술이 탁월한 스님이 순회로 진찰을 하게 되었는데 1일, 4일, 7일에 소산 서흥(西兴)에서, 2일, 5일, 8일에 상우 동관(东关)에서, 3일, 6일, 9일에는 소흥 보주교(宝珠桥) 강가에서, 돌아가면서 진찰을 하면서 민간에서 제자를 받아 의술을 전수함으로써 이 의술을 계속 길이 이어지게 하였다. 소흥은 사람이 제일 많고 수상 및 육상 교통도 발달해서 소흥의 ‘삼육구’가 가장 널리 알려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삼육구’가 정형외과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면서 절강 동부 지역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 日本語 —
「三六九」骨傷科の伝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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紹興の「三六九」骨傷科は「下方寺里西房の骨傷科」であり、初期には医者が山陰の下方寺里西房に住んでいたことからこの名がついた。三日、六日、九日に紹興に来て診療を行い、門前市を成す。そのため、「三六九」は骨傷科の代名詞になった。「清明の時節 雨 紛々。路上の行人 道転ぶ。借問す 骨傷科は何処に有る。牧童 遥かに指す 下方橋。」これは紹興に伝わる民謡で、骨傷科が下方橋の「三六九」骨傷科を指す。
昔、斉賢羊山一帯は採石業が盛んであったが、採掘道具が粗末で、方法が原始的で、負傷者が無数であった。また、治療手段が遅れているため、負傷者の家族は神頼みをして家族の無事を祈るしかなかった。ある日、一人のの老僧がやってきた。彼は羊山から木の根や野草などを採ってきて、火をひいて煎じ、粗い布にくっつけた。その名は「膏薬」だった。この膏薬を傷ついた石工たちの患部に貼って骨を接ぎ、足を折った者は立ち直り、腕を痛めた者はハンマーを振り上げることもできた。。
寺の小僧がはるばる来て、師匠に弟子入りして3年間苦学し、ついにこの妙技を身につけた。学問が完成した日,老僧は祥雲に乗って去った。老僧は弥勒仏が下界に降りてきたと人々が言い伝えていた。その恩恵に感謝して、羊山の孤岩に弥勒仏像を彫った。
人々に恩恵を与え、患者の治療を便利にするため、寺が蕭山、紹興、上虞にそれぞれ1つの治療点を設け、一人の医術の高い和尚が巡回して診察し、毎月の一日、四日、七日に蕭山西興で診察し、毎月の二日、五日、八日に上虞東関で診察し、毎月の三日、六日、九日に紹興宝珠橋の川沿いで診察する。そして、民間で弟子を受けて技を授け、この妙技を絶えず発揚させる。紹興城で最も人気があり、水陸交通も便利で、受診者も非常に多いため、「三六九」は骨傷科の代名詞となり、浙東地方に名を馳せ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