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文 —
张岱与兰雪茶
点击播放音频资料
张岱(1597-1629),号陶庵,绍兴府山阴人,明清之际史学家、文学家。张岱出身仕宦家庭,喜诗文书画、音乐戏剧。明亡后,避兵剡中。兵灾结束后隐居四明山中绍兴城西项王里,晚年卜居快园,坚守贫困,潜心著述,著有《陶庵梦忆》和《石匮书》等。
绍兴卧龙山北麓有石碑记:“明代散文家张岱,因清兵入关,国破家亡,诸家子孙零落,便僦居快园24年……”现今的绍兴饭店即为“快园”遗址,里面际山枕水,环境典雅。据地方志及张岱《快园记》记载,快园最早为明初监察御史韩宜可的别墅,后来有一位叫诸公旦的人成了韩家东床,被称“快婿”,该庄园也因之称为“快园”。张岱在快园居住了24年,他的著作《快园道古》就是在这里写成问世的。
民间传说,张岱嗜茶。他自谓《茶淫橘虐》,可见其对茶之痴。张岱不但嗜茶,而且识茶,从饮茶到品茶、评茶,无一不精。他也自己制茶。他经过一次次的实验,采茶、制茶、甚至是冲泡,他一一实险,以求得茶汤味达到最好。他多次进入会稽深山,踏遍了日铸岭附近的山头,常与茶农交谈,遍交茶友。他成功地改良了绍兴的日铸茶,并研制出一种名为“兰雪茶”的新茶。他在《兰雪茶》中详细地介绍了兰雪茶的研制过程。
后来,兰雪茶在茶市中风行一时,张岱功不可没。张岱也因此在绍兴茶史上留下了不可磨灭的一笔。
— English —
Zhang Dai and Lanxue Tea
Click audio playback
Zhang Dai (1597-1629), Whose literary name is Tao 'an, was born in Fushan, Shaoxing, and was a historian and litteraeur during the Ming and Qing Dynasties. Zhang Dai was born in an official family and enjoyed poetry, painting, music and drama. After the end of Ming Dynasty, he stayed in Shan county to avoid war. After war, he lived in seclusion in Siming Mountain, stuck to poverty, and devoted himself to writing, including 《The Memory of Tao An Meng 》 and《 A Book of Shi Kui》.
There is a stone tablet that says: "Zhang Dai, an essayist in Ming Dynasty, lived in Kuaiyuan for 24 years because of the Qing army's entry into the customs, and his family's children and grandchildren were scattered ..." Today's Shaoxing Hotel is a "Kuaiyuan" site, with mountains and waters and comfortable environment. According to local chronicles and Zhang Dai's "Kuaiyuan Records", originally,Kuaiyuan was the villa of the supervisory Censor Han Yike in the early Ming Dynasty. Later, a man named Zhu Gongdan became Han’s "son-in-law", and the manor was also called "Kuaiyuan". Zhang Dai lived in Kuaiyuan for 24 years, and his book《 Kuaiyuan Daogu》 was written here.
According to folklore, Zhang Dai loved tea. He called himself "Tea Abuser", which shows his obsession with tea. Zhang Dai not only loved tea, but also knew tea, from drinking tea to tasting and evaluating tea. He also made his own tea. After repeated experiments, he picked, made and even brewed tea, and he took risks to get the best taste of tea soup. He entered the mountains of Kuaiji many times and visited several hills near Rizhu Ridge. He often talked with tea farmers and made friends.
He successfully improved the Rizhu tea in Shaoxing and developed a new tea called "Lanxue Tea". He introduced the process of《 Lanxue Tea》in details. A few years later, Lanxue tea became popular in the tea market, which improved the reputation and taste of tea in his hometown.
In the history of Shaoxing tea culture, Zhang Dai has left an indelible contribution.
— 한국어 공부 해요 —
장대(张岱)와 난설차(兰雪茶)
클릭하여 오디오 자료 재생
장대(1597-1629), 호는 도암(陶庵)이며, 소흥부 산음 출신이며 명(明), 청(清) 시대의 사학가이자 문학가였다. 장대는 벼슬아치 집안 출신으로 시문과 서화, 음악과 희극을 즐겼다. 명나라가 망한 후에 전란을 피하기 위해 섬중(剡中)으로 갔다. 전란이 끝난 후 사명산(四明山)에 은거하면서 가난과 힘든 생활 속에서 저술에 몰두하여 <도암몽억(陶庵梦忆)>과 <석궤서(石匮书)> 등을 저술하였다. 소흥 와룡산 북쪽 기슭에 석비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明代散文家张岱,因清兵入关,国破家亡,诸家子孙零落,便僦居快园24年(명나라 산문가 장대는 청나라 군사가 궐을 장악하여 나라가 망해 가문과 자손을 잃게 되자 쾌원에 24년간 세들어 살았다)……’라는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 오늘의 소흥반점(绍兴饭店, 호텔)이 바로 ‘쾌원(快园)’의 옛터인데 안에는 산과 물이 아름답고 환경이 우아하다. 지방지(地方志)와 장대의 <쾌원기(快园记)>에 기재되어 있는 바에 따르면 쾌원은 본디 명나라 초기 감찰어사(监察御史)를 역임했던 한의가(韩宜可)의 별장이었으며 후에 제공단이라는 사람이 한씨 집안의 사위가 되어 ‘쾌서(快婿)’라고 불렸는데, 이 장원도 이 때문에 ‘쾌원’이라 불렸다고 한다. 장대는 쾌속에서 24년을 살았는데, 그의 저서 <쾌원도고(快园道古)>가 바로 이곳에서 집필되었다. 민간에 떠도는 전설에 의하면 장대는 차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스스로를 <차음귤학(茶淫橘虐,차를 마시며 농담하는 삶)>이라고 한 걸 보면 그가 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짐작이 갈 수 있다. 장대는 차를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차를 잘 알기도 한다. 차를 마시는 것에서부터 맛보는 것, 평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그는 또한 스스로 차를 만들기도 했는데 차맛이 최고가 되도록 차를 따고, 만들고, 심지어 우려내는 것까지 하나 하나 실험을 하였다. 그는 회계(会稽)의 깊은 산속에 여러 번 들어갔고, 일주령(日铸岭) 일대의 산꼭대기를 돌아다녔으며 차 농사를 짓는 이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함께 하는 친구를 널리 사귀었다. 그는 성공적으로 소흥의 일주차(日铸茶)를 개량하였고, ‘난설차(兰雪茶)’라는 새로운 차를 연구 개발하였다. <난설차>편에서 난설차의 연구 개발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훗날 난설차가 큰 인기가 있었는데, 장대의 공이 매우 컸다. 장대는 소흥의 차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 日本語 —
張岱と蘭雪茶
クリックしてオーディオデータを再生
張岱(1597-1629)、号陶庵、紹興府山陰人、明清の際の史家、文学者。張岱は官吏の家庭に生まれ、詩文・書画、音楽・演劇を愉しんだ。明が亡くなった後、兵災を避けた。戦争が終わった後、四明山の中に隠居し、貧困を守り、『陶庵夢憶』や『石き書』などを著述した。
紹興臥竜山の北麓に石碑がある:「明代散文家張岱、清兵入関のため、国破家亡び、諸家子孫零落、すぐに僦居快園24年……」今の紹興飯店は「快園」の遺跡で、中には山を枕に水を枕にして、環境が優雅である。地方志及び張岱の『快園記』によると、快園は明初監察御史韓宜可の別荘で、後に諸公旦という人が韓家の婿になって、「快婿」と呼ばれ、この荘園もそのために「快園」と呼ばれた。張岱は快園に24年間住んでいて、彼の著作『快園道古』はここで書いて世に出たのである。
民間の伝説では、張岱はお茶が好きであった。『茶淫橘虐』と自称しているので、そのお茶への痴呆ぶりが伺える。張岱はお茶が好きなだけでなく、お茶を知っていて、飲茶からお茶を飲んだり、お茶を評価したりするまで、すべてが精通していた。彼も自分でお茶を作った。彼は何度も実験を経て、茶摘み、茶作り、茶入れの方法、そして自ら最高の茶の味を求めることを努めていた。彼は会稽の山奥に何度も入り、日鋳嶺付近の山々を踏破し、茶農家とよく話をし、茶友と交わった。最後に紹興産日鋳茶の改良に成功し、「蘭雪茶」という新茶を開発した。彼は『蘭雪茶』の中で蘭雪茶の開発過程を詳しく紹介している。
その後、蘭雪茶は茶市の中で一時的に流行し、張岱の功績は大きい。張岱もこれによって紹興茶史に不滅の一筆を残した。